들어가며
서울 종로의 한 작은 사무실.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만세력 책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30년 동안 명리(命理)를 풀어온 김재선 선생님은, 최근 책상 위에 한 가지를 더 올렸다 — 챗봇이 떠 있는 또 다른 노트북. “요즘은 이 친구한테도 한 번씩 물어봐요”라며 그가 웃었다.
AI가 사주를 풀어주는 시대. 30년차 명리학자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한 시간 반 동안 나눈 대화를 짧게 정리해 옮긴다.
“나는 AI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다만 AI에게 의지해서 자기 자신을 안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그건 좀 무섭지요.”
Q. 30년 동안 사주를 봐오셨다고 들었어요. 처음 시작은요?
스무 살 무렵에 큰 시련이 한 번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동네 어른께 제 사주를 가져가 보여주셨는데, 그 어른이 “이 아이는 30대 후반부터 자기 길을 찾을 거다”라고 하셨답니다. 처음에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묘하게 그 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더라고요. 결국 그 길을 따라가게 됐습니다.
Q. 챗봇 사주 풀이를 처음 보셨을 때 어떠셨어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이거 큰일이다” 싶었어요. 한 30분 만져보니까 풀이가 꽤 정확하더라고. 그런데 두 시간쯤 더 만져보니까, AI가 절대로 못 하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Q. 어떤 부분이요?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 사람의 표정을 못 봐요. 사주는 종이 위의 8글자만 보는 게 아닙니다. 그 사주를 가지고 온 사람의 어깨가 어디로 굽어 있는지, 손이 떨리는지, 눈에 그늘이 있는지를 같이 봐요. 그게 풀이의 80%를 결정합니다.
둘째, 모를 때 모른다고 못 해요. AI는 답을 잘 만들어주는데, 사주에서는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오세요”라고 말해야 할 자리가 분명히 있어요. 그 자리를 AI는 자꾸 채우려고 해.
셋째, 시간 위에 사람을 못 올려요. 이건 좀 길게 설명해야 하는데...
Q. 시간 위에 사람을 올린다, 무슨 뜻인가요?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라도 1990년에 태어난 사람과 2020년에 태어난 사람은 살아가는 풍경이 완전히 달라요. 명리학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본 결’을 보지만, 그 결을 어떤 시대 위에 올려놓을지는 풀어주는 사람의 몫입니다.
예를 들어 사주에 식상(食傷) — 자기 표현 기운 — 이 강한 사람이 있어요. 30년 전에는 “이 사람은 말로 먹고 살 거다”였는데, 요즘은 그게 “유튜브를 하면 좋다”가 되거든요. 데이터를 아무리 많이 학습해도, 시대를 보는 눈은 사람이 가져야 해요.
Q. 그래서 AI를 무서워하지 않으신다는 건가요?
네. 오히려 AI가 명리학자의 일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만세력 펴고 한 시간씩 계산하던 게 이제는 1초면 끝납니다. 저는 그 절약된 시간을 사람을 더 들여다보는 데 써요.
다만 한 가지 두려운 게 있긴 합니다.
Q. 그게 뭔가요?
AI에게 답만 받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 사주는 답을 받는 도구가 아니에요.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도구지요. 그런데 챗봇은 친절하게 답을 다 만들어줘요. 그러면 사람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닫아버려요.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좋은 사주 풀이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좋은 질문을 한 개 더 만들어주는 풀이입니다.”
Q. AI 시대에 명리학이 어떻게 바뀔 거라고 보세요?
저는 두 갈래로 갈라질 거라고 봐요. 한쪽은 AI가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주는 ‘대중 풀이’. 다른 한쪽은 명리학자가 오래 들여다봐주는 ‘깊은 풀이’. 둘이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거예요.
대중 풀이는 더 많은 사람이 사주를 처음 만나는 입구가 될 거고, 깊은 풀이는 그중 진짜 자기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한 번 더 들어가는 자리가 될 거예요. 둘 다 필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사주를 처음 보는 분들께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보세요.” 사주는 운명을 정하지 않아요. 다만 “지금 너의 결은 이렇게 생겼다”고 보여줄 뿐입니다. 그 결을 알고 가는 사람과 모르고 가는 사람은, 같은 길을 걸어도 풍경이 달라요. 그 차이를 한 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닫는 글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재선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남기셨다.
“명리학자가 30년 동안 한 일은, 결국 사람한테 ‘너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이었어요.”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풀어줘도, 그 한 마디를 대신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게 이 오래된 학문이 가장 새로운 시대에도 살아남는 이유다.
— 달곰당 편집실